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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7일 금요일

십계명<하나님의교회>





회사 거래처를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회사에 돌아와서는 택시비로 결제를 받았다. 퇴근시간, 풀을 사오라는 아이의 부탁에 사무실에 있던 풀과 연필 몇 자루를 집으로 가져갔다. 사거리에는 맞은편 차량이 서 있기에 빨간 불에 비보호 좌회전을 했다.


모두 사소한 부정행위들이다. 사람들은 평소 정직하고 나름 훌륭한 시민으로 살아왔다는 생각에 이런 경미한 부정행위는 눈감아 준다. 그리고 스스로를 여전히 도덕적이며 정직한 사람이라고 여긴다. 이렇게 도덕성 척도를 자기 스스로의 기준으로 합리화하게 되는 심리를 ‘모럴 다이어트(moral diet)’라고 한다. 체중을 감량하기 위해 칼로리 섭취를 줄이듯 자리합리화를 위해 도덕성까지 줄이는 것이다.


일상 속에는 모럴 다이어트 사례가 빈번히 일어난다. 물건을 살 것처럼 상점에 들어가 맘에 드는 물건을 입어 보거나 만져본 후 온라인쇼핑몰을 통해 싼 값에 제품을 구입하는 것, 빨간 불에 무단횡단을 하는 것, 상점에서 거스름돈을 더 받고도 그냥 오는 경우 등 모럴 다이어트 사례는 예상 외로 은근히 많다.


199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 시카고대학 경제학과 교수 게리 베커(Gary S. Becker)는 인간행위에 대한 분석에서 모럴 다이어트의 심리에 대해 ‘불확실성 하의 합리적 선택’으로 평가했다. 즉 인간은 부정행위로부터 기대되는 이득과 손실을 비교해 이득이 클 때 부정행위를 서슴없이 저지른다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행동을 선과 악이라는 도덕적 관점을 떠나 결과가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의 효과만 비교하기 때문이다.


이런 모럴 다이어트 사례는 종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5세기경 로마가톨릭은 성경의 십계명을 바꿔버렸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분류’라고 불리는 이 십계명의 내용을 보면,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인 첫째 계명과 ‘너는 아무 우상이든지 숭배하지 말라’인 둘째 계명이 사라졌다. 또한 네 번째 계명인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주일을 지키라’로 둔갑했다. 이렇게 바뀐 십계명을 두고 가톨릭출판사는 “더 합리적인 이 분류가 차차 우세하여 그 후 가톨릭에서는 이 분류가 일반화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의 계명을 변개시켰다는 죄책감보다 합리적이냐 비합리적이냐가 먼저였다. 변개된 계명을 본 교인들의 반응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는 효과만 비교했다. 진리의 척도를 합리적이라는 명목으로 마음껏 주물러댄 것이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양심의 척도가 되는 도덕성의 관점을 떠난, 모럴 다이어트 심리가 작용한 것이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분류는 그렇게 탄생됐다.


생활 속의 모럴 다이어트는 사람들끼리 어느 정도 눈감아줄 수 있다. 하지만 신앙 속의 모럴 다이어트 심리로 빚어지는 부정행위는 눈뜨고 볼 수 없이 참혹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요한계시록 22:18~19)

출처: 패스티브 닷컴

밑 빠진 독과 콩나물시루<안식일,유월절,어머니하나님>



밑 빠진 독이나 콩나물시루는 구조상 별 차이가 없습니다. 둘 다 밑이 빠져 있거나 구멍이 뚫려 있어서 아무리 물을 많이 쏟아부어도 결과는 물이 전혀 고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사용 목적이 다릅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는 의미 없는 헛수고에 불과한, 어리석은 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독에 물을 담는 것이 목적인데 밑이 빠져 있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반면, 콩나물시루는 그 속에 담겨 있는 콩들을 길러내는 것이 목적입니다. 물이 고이지 않더라도 물을 자주 부어주어야만 콩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키가 쑥쑥 커 올라오게 됩니다. 바로 콩나물이 되는 것이지요.


콩나물을 기르려면 밑 빠진 독이 필요합니다. 하나만 생각하고 쓸모 없다 하여 그냥 버리기보다는 콩나물시루로 재활용한다면 오히려 풍성한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생각만 바꾸면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직도 내가 존경하는 목사의 말만 듣고 판단하거나 인터넷을 보고 판단하고 대형교회나 인본주의 철학사상을 추종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정말 영원불변의 성경 진리를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 입술로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과연 몇 퍼센트의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는지가 심히 의심스러운 시대입니다.



일곱째 날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는 하나님의 성도라면 결코 창조주의 기념일인 안식일을 무시하거나 멸시하지 않습니다. 또한 율법은 다 폐지되었으니 안 지켜도 된다는 삯꾼 목사들의 거짓 주장은 무시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교묘하게 속이는 자는 나쁜 인간이지만 쉽게 속는 자도 어리석은 자가 됩니다. 그래서 속는 자가 바보라는 말도 생긴 건지도 모릅니다.


성경에 없는 주일성수 교리를 열심히 따랐던 사람들이 결국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어리석은 행위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심판 때에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는 말씀은 바로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 적용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 사람의 계명, 주일성수 교리 정도는 담대하게 사도 바울처럼 배설물로 여길 줄도 알아야 하고 다소 허무하고 괴롭기도 하겠지만 미련 없이 버려야 합니다. 이제라도 안식일의 가치와 중요성을 성경에서 알아보려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갖고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응답하시고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실 줄로 믿습니다. 그래도 오랜 습관과 전통에 젖어서 미련과 고집을 버리지 않고 다가오는 일요일에 또다시 밑 빠진 독에 물 부으러 가실 겁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두렵지 않습니까?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로마서 2:5)



한 번쯤은 생각을 가다듬고 독 밑을 잘 살펴보시고 텅텅 비어 있는 독에 물이 왜 채워지지 않는지 원인을 알아보시고, 혹시라도 독이 깨져 있거나 밑이 빠진 부분을 발견했다면 콩나물시루로 재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속히 성경을 통해 안식일과 유월절, 어머니 하나님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알아보시고 생수를 흡족히 마시기 바랍니다. 결코 포기하거나 이제까지의 노력을 헛수고로 판단하거나 낙담하지 마시고 동전의 양면 같은 진실을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2014년 2월 18일 화요일

몽환포영의 비밀<새언약 유월절>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꿈꾼다. 그리고 행복해지기 위해 목표를 세우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노력한 만큼 얻어지는 결과가 미미할 때면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때론 허망함을 느낄 때도 있다. 몽환포영(夢幻泡影)이란 말이 이 때문에 생기지 않았을까. 인생은 꿈과 허깨비, 거품과 그림자 같다는 뜻으로, 결국 허무한 인생을 비유한 말이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몽환포영 속에는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비밀도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힌트는 ‘그림자 영(影)’에 있다.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히브리서 8:5)


늦은 밤 골목을 걸어가면 가로등에 비친 그림자를 볼 수 있다. 그림자가 존재하는 이유는 단연 ‘내’가 있기 때문이다. ‘나’라는 실체가 있어야만 그림자도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이와 같다. 이생의 삶은 하늘에 있는 것의 ‘影(영)’이다. 즉 이생은 하늘에 있는 것은 그림자이며 이생이 존재하는 이유는 실체인 ‘하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림자가 실체인 양 살아간다. 이 땅의 행복을 얻기 위해 재산과 목숨까지 걸며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렇게 해서 성공과 행복을 손에 넣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할 때가 부지기수다. 혹 그것을 얻더라도 영원히 지속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시련이 오면 날아가기 십상이다. 마치 가로등에 비친 그림자를 아무리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우리의 초점을 실체인 ‘하늘’에 맞추는 것이다.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신명기 10:13)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신명기 28:1~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저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요한복음 6:53~54)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26~28)


복, 행복, 영원. 이것들은 인류가 간절히 꿈꾸던 것들이다. 인류는 ‘행복’을 얻기 위해 지금도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그런 인류에게 가장 획기적인 소식은 바로 새 언약 유월절이다. 새 언약 유월절을 지켰을 때 비로소 영원한 행복과 더불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


몽환포영은 우리 인생의 허무한 삶을 가리키는 것이지만, 영원한 삶의 비밀을 깨달을 수 있는 단서이기도 하다.


출처: 패스티브 닷컴

2013년 10월 5일 토요일

이단의 판단 기준은 성경



인터넷에 올라온 이상한 이단 분별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다음은 어느 네티즌이 올린 ‘이단에 빠지지 않기 위해 주의해야 할 점’에 대한 글이다.


<이단에 빠지지 않기 위해 주의해야 할 점>
1. 사람을 신격화하는 것은 틀림없이 이단이다.
2. 자기 교회나 교단만이 계시를 받았다고 말하거나 자기 교회에 와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 자기 교회를 자랑할 수는 있다. 우리 교회가 좋은 교회라고 자랑할 수는 있다. 그러나 자기 교회에 와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는 것은 거의 100% 이단이다.
3. 전도는 예수 믿지 않는 사람에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 믿는다고 하는데도 성경을 내밀고 가르치려 한다든지, 구원받아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이단이다.


대체로 소위 이단 감별사들이 하는 말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이 방법으로 과연 이단을 분별할 수 있을까? 먼저, “사람을 신격화하면 틀림없이 이단이다”라는 문제를 성경으로 짚어보자.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께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을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을 인하여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참람함을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요한복음 10:30~33)


이러한 내용의 이단 분별법을 이용한 대표적인 사람들이 유대인들이다. 그들은 이 기준으로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을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박는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저질렀다.


두 번째, “자기 교회에 와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는 것은 거의 100% 이단이다”라는 문제를 짚어보자.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사도행전 4:11)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믿는 유일한 교회는 초대교회였다. 베드로는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만이 구원을 받는다고 하였다. 두 번째 이단 분별법으로 보면 베드로는 조심해야 할 사람이며 거의 100% 이단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예수(하나님) 믿는다고 하는데도 구원받아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이 이단이다”라는 내용을 살펴보자.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마태복음 10:5~6)


예수님 당시 하나님을 믿는 유일한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었다. 이스라엘 집에 가라고 하신 말씀은 지금으로 따지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가서 말씀을 전하라는 것과 같은 뜻이다. 세 번째 이단 분별법으로 보면 이미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 하셨으니 예수님도 이단인 셈이다.


참고로 이방에 대한 복음 전파는 예수님의 부활 승천과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부터 이루어졌다. 위에 제시된 이단 분별법으로 분별한 대표적인 사람들은 유대인이었다. 그들은 이 기준으로 예수님을 이단으로 매도하였고 십자가에 못박았으며 초대교회 성도들을 핍박했다(사도행전 24:5). 결국 예수님을 믿는 교회도 이와 같은 이단 분별법으로 판별해 보면 예수님도 이단이고 스스로도 이단으로 정죄하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단 분별법은 이미 2천 년 전부터 증명된, 잘못된 기준이다. 그런데 왜 이미 잘못된 것으로 드러난 이단 분별법이 2천 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횡행하는 것일까.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고린도후서 4:3~4)


악한 영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도록 혼미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단 분별법은 사실은 간단하다. 성경대로 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요한이서 1:7)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가 오히려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라고 가르치고 있다. 물론 예수께서 경고하신 대로 거짓 그리스도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짓 그리스도는 성경으로 분별할 문제다.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오셨다고 해서 모두 이단으로 매도하는 것은 예수님마저도 부인하는 잘못된 기준이며 적그리스도의 미혹에 불과하다.

출처: 패스티브 닷컴